Review of Eric Blanc’s Revolutionary Social Democracy

Peter Hudis

Summary: This article was published in English in International Marxist-Humanist, Dec. 3, 2023, here: https://imhojournal.org/articles/review-of-eric-blancs-revolutionary-social-democracy/ We are publishing the Korean version of the second half of the article, which appeared in Solidarity for a Another World : https://www.anotherworld.kr/1254

번역: 두 견

이 글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새로운 혁신적 재해석을 시도한 에릭 블랑Eric Blanc의 저작<혁명적 사회 민주주의: 러시아 제국의 노동계급 정치 1882-1917>,(Haymarket Books, 2022년 6월)에 대한 서평이다. 비록 이 책이 한국에 번역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 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관련된 서평을 계속 번역하고 소개해 왔다. 특히 인상적이고 유익한 이번 서평은 이 책의 장점과 기여 뿐 아니라 몇가지 한계와 공백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분석하고 있다. 이 서평의 필자인 피터 후디스는 구소련 사회에 대한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시도한 것으로 잘 알려진 오크톤Oakton 커뮤니티 칼리지의 철학과 교수이자 <프란츠 파농: 바리케이드의 철학자>의 저자이며 로자 룩셈부르크 전집의 총편집자였고 ‘국제 마르크스주의-휴머니즘 조직’의 회원이다. 글이 길어서 2번에 나누어 연재한다. 이것은 두 번째이며 마지막 글이다.

출처: https://spectrejournal.com/review-of-eric-blancs-revolutionary-social-democracy

첫번째 글에서 이어짐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블랑은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의회적 타협의 딜레마와 반자본주의적 통치의 도전에 직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는 좌파 정당이 혁명적 변화를 희생하면서 기존 구조에 적응할 가능성을 높인다고 말한다. 이는 지난 세기 동안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따라서 비타협적인 혁명 정치를 추진하는 것만이 예상보다 더 어려운 것으로 입증된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의회를 통해 변혁적 개혁을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둘 다 막다른 골목에서 끝난다. 그의 주장은 모순의 해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모순을 확인시켜 준다. 누군가는 블랑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문제가 단순히 삶의 해결되지 않은 모순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 핀란드 사례의 현대적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결국 핀란드 사민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일시적으로 의회 과반수를 확보했기 때문이 아니라 “소비에트에게 모든 권력을”을 지지하며 부르주아 의회주의를 단호히 거부한 세력이 주도한 두 번의 혁명이 개입하여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핀란드 사민당의 집권 과정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어떻게 어려움을 겪었는지에 대한 블랑의 논의는 오늘날 혁명 정치와 관련성을 확인하기는커녕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재조명하는 것이 현재의 현실에 직면하며 실질적인 정치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지에 대한 더 넓은 질문이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붕괴는 대부분의 반스탈린주의와 트로츠키주의로까지 확대되면서 일반적으로 제2 인터내셔널과 특별히 카우츠키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것은 볼셰비키의 경험을 지나치게 일반화한 사람들이 저지른 방법론적 오류에서 벗어난 것일까, 아니면 마르크스가 말했듯이 “과거로부터 우리의 시를 끌어내려는” 또 다른 변종일 뿐일까? 블랑은 “사회민주주의를 넘어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방법에 대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에서 제2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뿐, 최종 결론이 될 수는 없다”고 쓰면서 일반적인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주장이 막다른 골목에 가깝다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세 가지이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막다른 골목

첫 번째는 카우츠키 자신의 궤적과 관련이 있다. 그는 민주적 제도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혁명적 권력 장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민주적” 서구의 지배 계급이 (핀란드에서 일어난 것처럼) 사회주의자들이 의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의회를 폐쇄한다면 혁명적 권력 장악이 정당화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에서 무장 프롤레타리아 반란을 조장하는 전략적 방향을 거부했다… 서구의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기존의 민주적 통로와 자유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그가 사회 혁명을 의회주의와 동등하게 취급했다는 것을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후자의 역할이 전자를 대체한다. 그는 『권력으로 가는 길』(1909)에서 “사회주의당은 혁명적 정당이지만 혁명을 만드는 정당은 아니다… 혁명을 선동하거나 혁명을 위한 길을 준비하는 것은 우리 일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썼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혁명적 변혁을 희생하면서 기존 구조에 적응하는 좌파 정당의 문제를 결코 극복할 수 없다.

룩셈부르크는 다소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1907년 독일 제국주의의 남서 아프리카 정복에 대한 민족주의적 히스테리로 인해 사민당이 선거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선언했다:

“우리는 거의 절반의 의석을 잃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우리의 정치력이 약화되었다고 믿는 사람은 의회주의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혁명적인 대중 정당이다. 우리의 정치력은 제국의회 의석수가 아니라 인민들 사이에서 우리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수에 있다… 구제불능의 공상가들만이 우리가 점차 의회 과반수를 확보하고 이 과반수의 도움으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물론 우리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민의 과반수가 필요하지만 그것은 투표자의 과반수와는 다르다.”

1907년에 카우츠키는 그녀의 비판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1910년 룩셈부르크가 쓴 민주공화국을 요구하는 기사의 (그가 원칙적으로 지지해 왔던) 내용 중에 일부가 사민당의 선거 전망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워 그가 기사의 삭제를 제안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룩셈부르크는 기회주의에 굴복했다고 그를 비난하고 그와 관계를 단절했다.

당시 그녀를 옹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레닌, 율리우스 마르토프, 레온 트로츠키는 모두 카우츠키의 편에 섰다. 1914년 카우츠키가 제국주의에 공개적으로 항복하고 나서야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뒤늦게 룩셈부르크가 뭔가 문제를 알아차리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1910년 이전의 카우츠키에서 나중에 오른쪽으로 이동한 레닌까지 직접적인 선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레닌은 적어도 1914 년까지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였으나 결국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레닌은 카우츠키와 결별한 룩셈부르크나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회 혁명보다 의회 다수당 획득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없었다.

역사는 의회주의나 혁명적 봉기주의 모두가 대중 스스로의 활동을 구현하는 제도의 형성을 통해 시민사회를 국가보다 우위에 두지 못하면서 혁명적 변혁이 직면한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제2 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나 레닌 이후 레닌주의자 모두 이 모순을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모순의 희생양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임무는 그러한 결과를 반복하지 않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아포리아(난점)를 넘어서는 두 번째 이유는 당에 관한 것이다. 블랑은 1917년 전후의 레닌의 조직적 실천에 대해 별로 비판적이지 않다. 이는 레닌이 카우츠키의 조직 개념을 러시아 상황에 적용했다는 그의 (올바른) 견해 때문일 수 있다.

레닌은 조직 개념에 있어서는 분명 독창적이지 않았다. 민주적 중앙집권주의에 기반한 긴밀하게 조직된 전위 정당이라는 개념은 제2 인터내셔널의 핵심이었다(민주적 중앙집권주의라는 용어는 멘셰비키가 만든 것이다). 그러나 블랑은 이를 미덕으로 여겼지만, 소비에트의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로는 결함이 있었다.

1917년 10월 볼셰비키가 “소비에트에게 모든 권력을”이라고 선언하지 않았다면 권력을 잡았을지는 의문이다. 당의 주도적 역할과 이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었을까? 레닌이 이 슬로건이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한 1917년 7월, 볼셰비키가 소비에트에서 과반수 지지를 얻지 못했을 때 이미 긴장은 분명해졌다. 이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과반수를 확보하자 그는 이 슬로건을 다시 받아들였다.

레닌은 예외가 아니었다. 좌파 멘셰비키인 마르토프는 볼셰비키가 과반수를 차지한 후에야 ‘소비에트에게 모든 권력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마르크스주의의 모든 정파들은 소비에트에 대한 모든 권력이라는 개념과 당의 우선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골머리를 앓았다.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에서 언급되지 않은 것, 즉 당의 역할이다. 거의 언급되지 않았지만 정말로 잊혀지지는 않았다! 당의 문제는 새로운 이론적 출발점에 비추어 다시 생각되지 않았다.

이는 권력 장악 이후 당이 혁명을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에 대한 탄압의 도구로 사용되면서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런 의미에서 마르토프는 1919년 레닌 치하에서 “당은 서서히 주요 국가 기관이 되었고 … 따라서 ‘소비에트 권력’이라는 개념은 실제 정치적 내용 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들 중에서도 극소수에 의한 독재의 별칭이 되었다”고 말한 것이 정확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그 세대의 혁명가들이 당의 역할을 재고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그런 변명을 할 필요가 없다. 실제로 전 세계의 수많은 풀뿌리 운동이 탈중앙화되고 비위계적인 조직 형태를 선호하면서 당의 역할을 재고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당의 역할이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카우츠키-레닌의 정당 개념이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혁명가들이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는 어떤 종류의 정당이나 조직이 국가 권력을 성공적으로 장악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수많은 혁명적 권력 장악 이후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근본적인 질문이 아니다.

오늘날 가장 뜨거운 쟁점은 헌신적인 마르크스주의자 조직과 대중 투쟁 사이의 어떤 관계가 성공적인 권력 장악 이후 새로운 관료제나 지배계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2인터내셔널과 제3인터내셔널의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가 부상하기 전까지는 이 질문에 직면할 필요가 없었지만, 우리는 직면해야만 한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세 번째 한계는 사회주의 자체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혁명적 전술과 전략은 목표에 따라 달라지며, 목표가 잘못 설정되거나 불분명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전 세계적으로 계급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분명한 목표였다.

사적 소유를 종식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에 이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현실이 고통스럽게도 보여주듯이,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사유재산을 폐지했지만 계급 없는 사회로의 전환을 이루지 못한 정권에 대한 풍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그 대신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국가적 전제주의를 낳았다.

제2 인터내셔널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지지한 사회주의의 개념을 정의한 문장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노동자의 노동력을 사적 착취자에게 판매하는 행위가 폐지되면 오늘날의 모든 사회적 불평등의 근원은 사라질 것이다.”

이는 에어푸르트 강령뿐만 아니라 독일사회민주노동당, 독일사민당, (유대인) 분트, 폴란드사회당, 우크라이나 사회민주노동당 등의 창당 문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오늘날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0년은 소외된 생산과 재생산의 조건을 뿌리 뽑는 대신 사유재산과 ‘자유’ 시장을 폐지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가치 법칙이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사유 재산을 공공 또는 국가 재산으로 대체한다고 해서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가 심각하게 약화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훨씬 더 혁명적인 뿌리 뽑기가 필요하다. 오늘날의 현실은 제2 인터내셔널에서 볼 수 있었던 것보다 더 풍부하고 광범위한 사회주의 개념을 요구한다. 우리는 한때 그 시대를 구성했던 사람들로부터 여전히 많은 문제에 대해 배워야 하지만, 다른 시대의 진리에 따라 오늘을 살 수는 없다.

블랑이 자세히 설명한 역사적 발전이 현재의 곤경에 어느 정도 적용 가능한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혁명적 사회민주주의>가 이전 시대를 연구하는 데 풍부한 자료를 제공하는 모범적인 저작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책은 가능한 한 널리 읽히고, 다시 읽히고, 토론되고, 논쟁되어야 한다. 블랑이 이런 기회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해 우리는 고마운 빚을 지고 있다.

출처: https://www.anotherworld.kr/1254 [다른세상을향한연대: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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